제주4.3난민 故김동일 할머니의 유품 앞에서

2018년 4월. 제주4·3 을 ‘국가폭력’으로 인정하고 사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2003) 이후 긴 침묵을 뚫고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고 ‘4·3 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제주도민들에게 대통령은 이 두 사람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대통령 추념사에서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4·3 을 세상에 알리고 기억해 온 예술인들의 노력을 언급한 것이었는데, 그 중 임흥순 감독이 있다.

임흥순은 삶의 동반자이자 작업 동료인 김민경(프로듀서)과 함께 김민경의 외가이면서 동시에 한국현대사 비극의 집약체인 제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김민경의 어머니 김순자와 할머니 강상희의 이야기를 담은 <비념>(2012)을 제작한다. 4·3 에 대한 섬세한 접근과 미학적 표현으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이후 베트남 전쟁 당시 무희로 건너가 현재 테헤란에 살고 있는 이정숙 할머니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제작된<환생>(2015), <비념>에 출연했던 강상희 할머니에게 4·3 당시 죽은 남편(김봉수)을 만나게 해드리기 위한 작업 “다음 인생”(비디오 인스톨레이션, 24분10초와 故김봉수의 기록 유물을 포함한 가변설치, 2015) 등으로 아시아, 전쟁, 여성 등을 키워드로 작업을 지속해 왔고 이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7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집대성 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이데올로기 전쟁이 극에 달한 20세기 초에 태어나 격동의 한국현대사와 궤를 같이한 정정화(1900-1991), 김동일(1932-2017), 고계연(1932-2018), 이정숙(1944-) 네 명 할머니의 삶과 그들이 살아낸 세상 그리고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는 대작이다. 25회 4·3 미술제<기억을 벼리다>에 출품된 임흥순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김동일 편(HD비디오, 35분, 2018)“과 “거룩한 죽엄을 슬퍼마세요”(사진액자,김동일 할머니가 사용하던 등나무 의자, 테이블, 스탠드 조명, 2018)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새로운 변주다. 본 호 표지로 수록된 사진 속 화려한 상의는 김동일의 유품이다.

제주 조천에서 태어난 김동일은 1948년(당시16세) 4·3 당시 연락원으로 활동했다. 군경의 토벌 작전이 확산되자 한라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6개월 후 경찰에 검거된다. 광주형무소로 이송되었으나 한국전쟁이 벌어졌고, 난리 속에 지리산 생활까지 하게 된다. 육지에서의 활동 또한 군경 토벌대에 의해 종료되었고, 감옥살이 후 고향인 조천에 돌아왔으나 ‘빨갱이’로 낙인 찍혀 자유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후 4·3 60주년(2008)이 되어서야 제주를 다시 방문할 수 있었고2017년4월23일 일본 동경 자택에서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임흥순은 2015년5월, 김동일을 처음 만났다. 그는 일본 동경에서 김동일의 집 문을 여는 순간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오고 가는 통로와 잠자리를 제외하고 천장까지 가득 쌓여있는 물건과 옷들은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그 무엇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 온 김동일, 그녀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후 2017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임흥순은 유가족(함께 살았던 아들)과 협의를 통해 그녀의 유품을 한국으로 옮겨올 수 있었다. 운송 과정만 2개월이 걸렸다. 50개가 넘는 박스로 포장된 유품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유품의 무게 만큼이나 그것을 인수받은 그의 마음과 어깨도 무거웠을 것이다. 그는 정리, 분류, 세탁과 아카이브를 위한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그 결과물 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2천 점의 옷들. 패턴과 색상, 디자인 등의 화려함과 현대성은 항일운동가의 후손으로서4·3 항쟁에 동참했던 강인한 청년으로 상상하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김동일, 한 사람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작업 과정이다. 임흥순에게 2천 점에 달하는 옷가지들은 마치 4·3 당시에 희생된 수많은 죽음의 형상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한 벌, 한 벌의 옷을 통해 당시 희생된 수많은 생명, 피어나지 못한 한 명, 한 명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2018년 제주도청 계간지 봄호 25회 4.3미술제 <기억을 벼리다> 참여작가 임흥순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기고했다.

덧붙이는 글 | 제주도청 계간지 <제주> 2018년 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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