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마무리하며
<노지문화> 기획 후기

서귀포시가 법정 문화도시로 최종 선정되었다. 2019년 예비 사업을 진행했던 7개 지역 모두 ‘제1차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어 향후 5년 간 최대 100억원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반가운 소식이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

지난 여름, 서귀포시의 예비 문화도시 사업 성과를 담은 전시기획을 의뢰 받았다. 개막식에서 출품작 하나가 일방적으로 가려져 논란이 되었던 전시, 바로 <노지문화>(2019.10.16~11.17 서귀포시민회관)다. 관련 내용이 언론보도를 통해 공론화 된 이후로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애초 법정 문화도시 선정은 타 지역과의 경쟁구도로 추진되고 있었다. <노지문화> 개막식 문제가 가시화 된 것은 서귀포시 입장에서는 큰 오점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당초 부실했던 둑은 불어나는 강물에 무너져버렸고, 강물은 순식간에 쏟아져 내렸다. 기획을 업으로 하는 나로서도 불명예인 것은 마찬가지다. 또 당사자, 참여작가들은 오죽하랴.

서귀포시청과 피해 작가 사이에서 참 곤혹이었다. 장소 섭외, 행사 기획, 모든 인력을 섭외 총괄 진행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귀포시청의 용역에 불과하기에. 나 또한 피해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중재자의 역할을 요구받았기에. 누구보다도 성황리에 행사를 치뤄내고 싶었다. 하지만 개막식 사건은 역량과 권한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당사자 작가의 심정을 어떻게 대변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발뺌하기보다는 책임져야한다는 마음이 컸다. 제주의소리 10월 24일 기사 “부끄러운 서귀포시, 문화도시 기획전 4.3작품 ‘검열’ 논란”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제주민예총은 서귀포시청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제주의 많은 언론사가 이 문제를 다뤘다. 하루에 전화가 40통씩 왔다. 서귀포시가 진정한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작은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애초의 마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당사자와 함께 공론화를 결정했지만, 첫 기사가 나온 이후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 더이상 응할 수 없었다. TV출연도 마다했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서귀포시청 문화예술과와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의 무책임과 무지함에 대한 내부 비판 그리고 개선을 바라며 시작된 행동이었지만, 공론화 이후 언론에서의 화살은 서귀포시장을 겨누고 있었다. 아, 곧 선거철인가. 심상치 않은 여론을 감지한 걸까. 서귀포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 사과했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개막 이후 만난 많은 이들이 <노지문화>에 대해 먼저 물어왔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공권력에 의해 개막한 전시의 작품이 일방적으로 가려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검열이기 보다 공무원 갑질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사전적 의미의 ‘검열’인 것은 사실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작품이 공개되는 것을 통제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고 정점일 뿐. 할많하않. 관계자들의 원망도, 언론의 관심도 모두 불편했다.

논란으로 주목받는 전시에 연계된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제주에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겠는가 걱정해주는 지인들이 있었다. 모두가 갈망하는 거래처가 아닌가. 관공서.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꿈틀’은 의식적으로 하는 게 하니라 본능적인거다. 양심과 자존을 지키는 것이 삶의 동력인, 이렇게 생긴 사람이 나인 것을. 당시의 혼란 속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지 싶다. 어떤 수치심, 비참함, 패배감 그리고 무기력함. 한 가지 아쉬움은 전시 내용과 작품을 소개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문화 원형, 순수함 그 너머에는 돌봄이 없이 내버려진 아픔이 공존하고 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기에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섬 나라. 우리는 뒤늦게 제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지만, 언제나 변방일 뿐이었던 섬 사람들은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개발을 원한다. 이 모든 아이러니가 ‘노지’라는 한 단어에 함축되어 있었다.

서귀포시 문화도시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 “105개의 마을이 가꾸는 노지문화 서귀포”는 익숙하기 때문에 소홀히 여길 수 있는 공동체, 일상, 노동, 신앙, 역사 등 서귀포시만의 문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우리가 함께 지키고 가꾸어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때문에 <노지문화>는 화이트큐브가 아닌 동홍동 주민들의 생활공간 ‘서귀포시민회관’에서 진행되었다. 서귀포시민회관은 서귀포시의 몇 안되는 근대건축유산 중 하나다. 문화체육활동의 거점으로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시설은 낙후되었지만 하루평균 200여명의 유동인구가 존재하고, 시민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애용 중이다. 과거에는 학예회, 선거 유세 등의 공간이었고 현재는 민방위 훈련, 배드민턴 연습, 각종 공연 연습, 각종 문화행사, 유치원 운동회, 초등학교 졸업식 등 일주일 내내 일정이 꽉 찬다. 정책 방향에 ‘105개 마을’이 언급되어 있는 것과 같이 문화도시 사업은 중앙집권적이면 안된다. 서귀포시민들의 삶 속으로, 일상 속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낮은 자세로 시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안전 등의 문제로 서귀포시민회관이 곧 철거된다고 하니 <노지문화>는 더 좋은 공간으로 재탄생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치성’이기도 했다. 실제로 목공 판넬 제작, 도장, 전기 조명 공사 등 전시를 제작하며 현장에 상주했던 기간 동안 시민회관을 이용하는 많은 분들과 ‘문화도시’를 키워드로 다양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작품을 소개하기에 열악한 환경이지만 취지에 공감한 참여작가 분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 원상복귀를 안해도 되는(기획 당시에는 12월 건물 철거 예정이었으나, 현재 2020년 중으로 무기한 연기되어 전시는 일부 철수한 상태다) 공간의 특이 상황과 일 년간 진행된 예비 문화도시 사업의 성과를 시각화해야하는 조건 등은 계단을 활용한 벽화, 픽셀아트, 초크아트 등의 아트월 프로젝트로 집약되었다. 시민 의견 수렴을 위한 장치로 포스트잇을 활용했다. 전시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한 커뮤니티 예술교육 “기억 모닥치기”가 진행되었다. 매주 업데이트 되는 아이들의 설치 작품 또한 이번 전시의 주요 포인트였다. 주어진 조건 대비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음을 자부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정성과 노력이 작품 검열 사태로 인해 조명 되지 못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나의 2019년은 10월에 멈췄다. <노지문화>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2019년을 의미 있게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썼다 지웠던 수많은 문장들. 낙오 시킨 지역 없이 7개 지역 모두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결정이 고맙다. 부디 2020년에는 상처받는 이없이, 행정과 현장의 예술가들이 동반자로서 서로를 의지하며 공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대를 군림하고 우위를 점하려는 야만과 어리석음이 아닌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 소통과 협의로 모든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해본다. ◼︎박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