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게임에 골몰하는 일,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숲길을 탐색하고 폐산업시설과 방치된 방공호에 드나든다. 얼핏 보면 말과 우정을 나누고 바다와 산을 오가며 자연과 더불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은 군사화된 산업지대. 아이들은 말하고 있었다.

“우린 뭘 할까? 여기 남게 될까? 떠나게 될까?”

<두렵지 않아>는 반어법이다. 두렵다. 대학 입학과 좋은 직업? 미래가 두렵다.

미카일 카리키스 작가는 2016년, 수개월간 영국 동남부의 ‘아일 오브 그레인’ 지역에 살고있는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들은 7세, 13세, 18세, 25세, 60세 각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랩’의 형식을 빌려 자신을 표현한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가면을 만들어주었는데, 익명성과 동시에 가능성이 부여된 것처럼 느껴졌다. 숲이라는 생명의 공간 속에서 가면 쓴 아이들은 악기를 두드리며 감정을 해소한다. 이 장면에서만큼 그들은 자유롭고 무한한 존재로 보인다. 작가는 가면 쓴 아이들을 촬영한 사진 작품에 <리틀 데몬스(Little Demons)>라는 제목을 붙였다. 데몬(Demon)은 수호신이라는 긍정적인 뜻도 있지만 타락한 천사 혹은 악마와 같이 부정적인 뜻도 포함되어 있다. 악동들. 그들은 어떤 인물로 성장하게 될까.

내 삶은 과연 나만의 성취일까

나는 이번 전시에서 코디네이터라는 역할을 맡게 되어 모든 연계프로그램을 참여하는 행운(?)을 누렸다. 하나의 전시를 이렇게 열렬하게 관람한 적이 있었던가. 지난 달 29일, 서영표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오프닝 강연을 시작으로, 평소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영국 사회의 짙은 그림자 속을 들여다본다. 민영화와 양극화. 머지않아 도래할 우리 사회의 모습일까.

전시 기간은 다소 짧지만 풍성한 연계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50여 년간 ‘사회적 사실주의’ 영화를 제작해 온 켄 로치 감독의 <케스>(1969), <엔젤스 쉐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2012), <달콤한 열여섯>(2002), <하층민들>(1990), <네비게이터>(2001) 다섯 편을 상영했다. 

그 중 <케스>는 미카일 카리키스가 큰 감명을 받은 영화다. <두렵지 않아> 작품 제작의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케스>, <엔젤스 쉐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달콤한 열여섯>의 주인공들은 모두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부모와 학교 선생님의 욕설과 구타, 폭력배의 협박 등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케스>의 주인공 15세 소년 빌리 캐스퍼는 매(이름이 ‘케스’다) 훈육에 재능을 발견하며 암담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아간다. <달콤한 열여섯>의 주인공 또한 15세 소년. 리엄은 어머니가 출소한 뒤 함께 새 출발하기를 꿈꾸며 위험을 무릅쓰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폭력적인 환경들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하층민들>과 <네비게이터>는 사회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민영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상영이 끝나면 긴 한숨과 안타까운 탄식들로 공간이 메워지곤 했다. 머릿속에 <두렵지 않아>의 비트가 맴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린 뭘 할까? 여기 남게 될까? 떠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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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시민기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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