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새하얗다.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다. 조명이 있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책과 복사물들이 있다. 책 하나를 집어 읽다 보면 종종 ‘징-’하고 복사기 작동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책의 일부분을 전시장 밖으로 가져가기 위함이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481-5에 위치한 현대미술관 산수문화의 2017년 첫 전시 <비평실천>의 풍경이다.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볼(읽을) 수 있는 책 “비평실천”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되었고, 미술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평론가 9명의 글이 담겨있다. “비평실천”은 전시장 내에서만 읽을 수 있고 전시가 끝난 뒤 전부 폐기된다. 단, 복사물은 소장가능하다. 2월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간의 전시기간 내 금, 토, 일요일에 걸쳐 평론가들과 함께하는 대담 프로그램이 5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일요일 늦은 오후에 방문하여 전시를 관람(?)한 뒤 패널과 함께하는 대담 프로그램 두 개에 참여했다. 첫번째 프로그램은 독립 웹진 크리틱-칼을 운영하는 시각예술 평론가 홍태림과 인문학 작가 정지우가 함께한 “두 발 서기, 네 발 서기”. 최근 3년 간 미술계에서 벌어진 부조리하거나 불쾌한 일들을 기억하기 위한 “암운의 연대기(홍태림)”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미술계를 ‘섬’이라고 표현했다. 육지와 단절된 섬. 섬 안에서 벌어진 부당한 일들은 문제 제기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방식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함께 토론하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린다. 섬의 그림자다. 아무것도 전시되어 있지 않은 전시장에 모인 사람들의 눈빛과 온기가 가득 찼다.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허공에 흩어진다. 여백. 미술계에 대한 꽤 근본적인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현대미술은 타 예술 장르에 비해 관객의 능동성을 많이 요구한다. 일단 작품을 보려면 무조건 걸어야 한다. 시간 제약도 없고 관람 순서도 없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품의 위치와 정보가 적혀있는 지도가 놓여있다. 관객들은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입장과 퇴장 외에 모든 것이 자유롭다. 체력을 준비하고 작가와 전시의 사전정보를 습득하는 것까지, 끊임없이 능동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전시 풍경은 잡지에서 보았던 한 장의 광고처럼 소비되고 사라진다. 전시장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전시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두말하면 입 아픈 한국사회. 여가까지 노동을 하고싶은 사람은 많지않다.

비평의 위기는 현대미술이 동시대 대중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정녕 미술 잡지가 소비되지 않는 이유가 SNS가 발달하여 전시 후기를 남기는 방식이 이미지로 대체되었거나, 긴 글을 읽는 독자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되려 인터넷의 활성화와 SNS라는 1인 미디어는 수많은 관객 비평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문학과 영화, 음악과 공연의 비평과 후기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현대 미술 전시를 관람한 관객들은 말이 없다. 정녕 비평의 위기인가, 미술의 위기인가?



이어읽기 🚪 http://www.vop.co.kr/A00001120675.html

덧붙이는 글 | 인터넷언론 VOP [박민희의 미술이야기]로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위 링크를 클릭하시면 본문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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