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우리가, 세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자타의로 고립된 상반기를 보낸 사람들은 감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임을 주장하듯 정부의 열혈 캠페인을 뒤로하고 야외 공원 등으로 쏟아져 나왔고, 명절 연휴를 활용해 국내 여행을 떠났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지 간에 개인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은 한 사람을 둘러싼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서식지가 사라진 야생 동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일회용품 쓰레기들, 감염으로 인한 고통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 2020년, 그 누구라도 한 번 쯤은 환경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우연하게 혹은 필연적으로, 올 해 관계한 두 개의 전시는 모두 자연 속에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기획과 진행을 도맡은 신예선, 스톤김, 최성임 3인 전시 ⟪쓸모를 잇는 시간⟫(6.18~7.21)이고, 두번째는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불의 숨길 아트 프로젝트-불의 기억: 자연, 인간, 생명의 길⟩(9.4~20)이다. 먼저 ⟪쓸모를 잇는 시간⟫은 앤트러사이트 제주 한림이라는 정체성 강한 공간 주체와 ⟪낮을 잇는 달⟫(산지천갤러리, 제주, 2019)로 연결되어 시각예술 무대의 확장을 실험하고 있는 신예선, 스톤김, 최성임 세 명의 작가 주체를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 앤트러사이트 제주 한림은 옛 전분 공장을 재활용해서 조성되었는데 내부 공간의 반 이상이 다양한 식물과 이끼들로 채워져 있다. 실외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인 독특한 풍경이 방문객에게 어떤 미적 체험을 제공하고 우리들에게는 작업 의지를 일으켜 주었다. 전시 제작 과정에서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문제 의식과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하게 된 현재, 문명에 대한 회의, 반성과 실천 방법 등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당시 생태미술을 의식하고 있거나, 지향했던 것은 아니다. ‘자연과의 공존을 실험’하는 전시로 다수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재료로써 플라스틱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은 생태적이었다.

“태도나 생각 그 자체가 작업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희미한 벽’에서 플라스틱 없는 작업을 실행하지 못한 데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작업에서 얼마나 이런 생각을 지속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저에 대한 의구심이 드러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꽤 오랜 기간 ‘잘 없어질 수 있는’ 작업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를 계기로 좀 더 구체적으로 작업에 적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신예선, 작가와의 대화(6.26) 중에서

이후 신예선은 완전한 야외 공간, 협재 해수욕장 야영장에 설치한 ‘고치를 짓다’에서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입해야하는 불편함과 결과물의 시각적 효과를 장담할 수 없음을 감수하며 플라스틱 재료를 종이로 대체했다. 누에가 뽑아낸 분비물과 종이만으로 설치된 유목적 구축물 ‘고치를 짓다’는 사회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비 바람과 야생 동물의 영향을 수용하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자리에서 소멸되었을 것이다. 작품 설치 기간 동안 공벌레와 달팽이들이 느릿느릿 작품 위를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양파와 마늘 같은 식재료를 생명으로 인식하고 키우다 죽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담은 스톤김의 ‘작업의 역설’ 시리즈는 앤트러사이트 제주 한림에서의 전시 이후 온라인에서 비물질로 전시되었으며, 평소 양파망, 플라스틱 공, 비닐, 금색 빵 끈과 같이 현대사회에서 너무 흔하고 하찮게 느껴지는 공산품들을 주 재료로 대량 사용했던 최성임은 ‘북두칠성’에서 라이스페이퍼를 재료로 끌어들이는 실험을 했다.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불의 숨길 아트 프로젝트-불의 기억: 자연, 인간, 생명의 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나라 유일의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지질과 생태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한 축제의 장이었다. 그중 주요 프로젝트는 거문오름부터 월정리 해안까지 새로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를 개방하는 <불의 숨길>이었는데,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갔던 흔적을 따라 걸으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지질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아트 프로젝트의 수행 과제는 그 길 곳곳에 사유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예술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숲에 들어가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야생 현장에 작품을 설치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어 작품 고정을 위해 땅을 깊게 파거나 현장 용접 등 훼손 가능성이 있는 행위는 (당연하게도) 모두 불가능했고 작품 설치 전후로 세 번의 태풍이 지나갔으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많은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 속에서 다수 방문객을 고대할 수도 없는 아이러니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박 2일에 걸친 세 번의 현장 답사(6월)와 2박 3일간 진행된 워크숍(7월)을 통해 작품 구상과 설치 방법을 모색했고, 행사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나 사고 없이 무사히 치러졌다.

20명 작가들이 발표한 23점의 작품들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었다. 현장의 재료만을 활용하여 자연의 생명력과 경이로움을 환기시켜주는 자연미술, 작가의 해석과 의도를 좀 더 중심에 둔 야외 설치, 관객들의 참여와 그들의 관계로 작품이 완성되는 생태적 성격의 작품 등이 서로 혼합되거나 그 경계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했다. 고승현은 바람에 반응하는 돌탑 ‘오름의 기억’을 쌓았고, 이승수는 죽은 나뭇가지와 넝쿨 등을 재조합 하여 거문오름의 ‘태초’를 표현했다. 김순임은 ‘흐르는 돌’을 통해 돌, 불, 물, 생명의 순환적 구조와 수천년 흘러온 자연의 시간을 시각화 했다. 이들은 모두 현장의 식생에 위배되지 않는 주변 자연 재료를 수집 활용한 작품들로 마치 돌과 나무들이 동물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 냈다. 종이 철사로 뜨개질하여 바위들을 감싼 정혜령의 ‘자라다_땅의 기억’은 전시 기간 동안 흙과 빗물 햇볕 등의 영향을 받아 익어갔고 비로소 완성되었다. 설치 초기의 강렬했던 존재감은 점차 사라지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부지현의 ‘비추고 반사하다’는 스테인레스 스틸 미러 재료를 활용한 완전한 인공물로써 작품을 제작했지만 물이 고여있는 못에 설치하여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조화를 이룰 때에만 원의 형상을 만들어 내도록 설계되었다. 김도형 또한 스테인레스 스틸 미러를 활용하여 ‘Door-earth-Door’라는 문을 설치했고, 인위적 재료와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주변의 환경을 수용하여 조화를 이루었다. 

현장의 소리를 주재료로 만든 정만영의 사운드아트 ‘생명의 움직임’과 전원길의 ‘흐르는 생명’은 환상적인 균형을 보여주었다. 청각이 확장된 착각을 일으키는 생명의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공기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는 흐르는 각목들은 마치 중력을 상실한 듯 했다. 움직이는 작품에 사운드가 결합됨으로써 시각예술은 단숨에 공연예술이 되었다. 환경에 의해 당초 계획을 변경한 작품들도 있다. 이연숙은 북오름굴 입구를 막고 있는 스테인레스 구조물에 ‘빛과 소리 그리고’를 설치했는데, 그 곳이 박쥐 서식처임을 고려하여 당초 계획보다 적은 면적으로 설치 범위를 수정했으며, 대나무로 만든 이응우의 대형‘정낭’또한 당초 계획과 달리 가로 형태다. 웅장하게 서 있었던 ‘정낭’은 9호 태풍 마이삭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고, 결국 자연에 순응하며 엎드린 가로 형태로 완성되었다. 여상희는 문명의 상징으로서 신문지를 해체하고 그것들을 다시 뭉쳐 낸 ‘회귀의 구’를 보여주었는데, 설치 이후 비바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졌고 이름 모를 새싹까지 틔워냈다.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다시금 그것을 해체하여 새로운 구를 만드는 순환의 과정을 계속해서 전해오고 있다.

유일하게 관객 참여 퍼포먼스 작업으로 작품을 완성한 강술생 작가는 ‘우후석순(雨後石筍)’을 통해 당처물 동굴의 석순을 시각화 했다. 당처물 동굴 주변 밭의 모래가 그의 유일한 재료였다. 이틀에 걸친 관객들의 참여를 통해서 우후죽순으로 ‘우후석순’이 생겨났다.

 자연 속에 작품을 전시한다고 해서 혹은 자연을 주제로, 재료로 작품을 제작한다고 해서 모두 생태미술로 명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시도하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직관적으로 체득되는 배움이 있고 이는 생태미술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생명들의 상호의존성과 관계성 즉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 생태주의라면 생태주의 미술, 생태미술은 미적 체험을 넘어서 사회적 실천을 동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전혜숙은 『바깥미술회와 야투 그룹의 자연 미술에 나타난 생태주의적 특성』(2018, 미술사학보)에서 “일반적으로 생태미술(Ecological Art, Eco-Art)이란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위기라는 현 시대의 문제를 미술을 통해 알리거나 적극적으로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생태계의 원리를 모든 살아있는 종과 서식지에 적용함으로써 지구의 생명 형태, 자원 및 생태계를 보존 및 개선하려는 실천적인 미술 형식을 지칭한다.”고 했고, 정헌이는 『통섭학으로서의 생태미술: 생태주의 미학의 새로운 전망』(2012, 한성대학교)에서 수지 가브릭(Suzi Gablic)의 말을 빌어 생태미술은 “단 하나의 자각,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 세계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에 헌정된 비전”이라고 전한다. 마순자는 『연구동향: 미술과 자연-생태미술』(2000,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에서 “생태미술이란 생태계(Ecosystem)의 사이클과 리듬에 반응하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과정을 미술로 수용하는 자연환경미술의 한 영역”이라고 했다. 또 생태미술의 특징으로 “자연 물질로서 자연의 장소에서 만들어지고 자연 내에 존재하다가 자연의 현상으로 소멸한다”고 꼽았다. 생태미술의 성격은 과거 좀 더 넓은 범위의 친환경적 성격의 작품까지 포용하고 있었다면 점차 정치적, 실천적 내용과 행동주의로 좁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에 따르면 앞서 올 해 제주에서 제작된 많은 작품들을 모두 생태미술이라 포괄하기는 어렵지만 생태적 성격을 띄거나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태미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미술의 범주를 넘어선 사회적 각성을 촉구하는 행위들로 성큼 나아가고 있다.

제주에서의 삶은 원하든 원치 않든 생태적이다.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며 어디에서나 하늘과 바다, 산을 바라보며 산다. 학술적 근거를 운운하지 않아도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제주에서 생태적 태도로 전시를 제작하는 사례가 더러 있었다.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안혜경 전시 감독이 2001년에 기획한 ⟪목 긴 청개구리⟫(2001.10.13~22, 세종갤러리와 갤러리 제주아트; 2001.11.3~29, 서호미술관, 경기 남양주)는 제주의 습지가 주제였는데, 강요배, 고길천, 김세진, 윤동천, 임영길, 임옥상, 정상곤, 정원철, 홍진숙 총 9명의 참여작가와 함께 계절 변화에 따라 일부 습지를 세 차례 방문했고, 전시를 개최하기 까지 함께 공부하고작업하는 일시적 공동체를 형성했다. 현장 답사에는 때에 따라 환경운동가, 철새 전문가, 식물 전문가, 소설가 그리고 기자와 일반인들이 참여했으며 ‘생태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최근 국제적으로 그 가치와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습지에 대해일찍이 관심 갖고 연구한 내용이 귀감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기획자와 작가 관객이 서로 배우고 영향을 주고 받는 열린 태도를 밑바탕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1994년부터 탐라미술인협회의 주도로 개최된 제주4⋅3미술제 또한 작품 창작과정으로 해마다 4⋅3 유적지 순례를 진행한다. 잃어버린 마을들은 대나무숲으로 채워졌거나 멀구슬나무만 남아 그 곳이 집 터였음을알려준다. 참여작가들은 낮은 자세로 현장의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자연의 소리이지만 인간과 사회, 자연의 관계를 내포한 역사의 묵언이기도 하다. 그간 관심 갖고 참여했던 현장들 그리고 올 해 만난 두 개의 전시 제작 과정들이 모두 생태적 성격을 띠는 공통성이있었다는 생각에 닿는다. 생태미술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배움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생태미술을 하기에참 좋은 곳이 제주인 것은 알겠다.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로 다방면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지금 제주 생태미술의 가능성은 활짝 열려있다는 사실이다.

다운로드 🚪http://www.jfac.kr/contents/

덧붙이는 글 | 제주문화예술재단 계간지 『삶과 문화』 7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위 링크를 클릭하시면 PDF파일 다운로드 페이지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