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집히고 있다. 여성들이 말 하기 시작했다. #Metoo 해쉬태그 미투, #Withyou 해쉬태그 위드유 운동이 한국 사회를 뒤집어 흔들며 낡고 썩은 사고방식들을 털어내고 있다. 타인을 하찮게 여기는 무서운 발상은 권력이 있는 곳이라면 예외 없이 존재한다. ‘4⋅3의 현재적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25회 4⋅3 미술제에 동참하면서 나 또한 한 명의 여성으로서, ‘여성’이라는 소수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권력 구조 속에 노출된 경험이 많지 않았다. 기성 사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의지도, 출세에 대한 욕구도 적다. 내가 흥미를 갖고 관계했던 작은 사회 내에서 누군가를 군림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 공동체성을 중시하는 예술 단체를 만들어 운영했고, 그 피로감에 지쳐 방황할 즈음 미술계 내 성폭력 문제가 세상에 터져나왔다. 2016년 가을. 온라인 페이지에 게시되고 공유되는 수 많은, 섬세한 증언들에 몰입하며 불면증에 시달렸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터져나오는 성폭력 생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들은 원인 모를 불쾌감과 찝찝함으로 잊혀졌던, 이제야 생각해보니 폭력이었던 기억들을 환기시켜주었다. 피해의 기억은 왜인지 더 생생하게,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다. 

세상은 변한다. 오늘날 우리는 70년 전 4⋅3의 참혹함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다. 국가권력의 총 칼 앞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폭력을 상상하기 어렵다. 반면, 견고한 자본의 논리로 구축된 경쟁 구조 속에서 조금 더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을 셈하며 불안정하게 살아간다. 인류는 마침내 굶주림에서 해방되었지만 각박한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무수한 폭력 속에 무너지는 자존을 붙잡으며 살아가고 있다. 모든 폭력의 본질,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는 순간은 절대적으로 닮아있다. 새로운 시대 우리의 과제는 사회에 만연한 수직적 권력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다. 권력의 부당한 남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개개인, 소수자를 포함한 모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공적 관계에서 사리사욕을 배제한 공정한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성찰 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아주 조금 더 평등하고, 아주 조금 더 평화로운 상태를 향해 변화 발전한다. 이 희망의 메세지를 포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한다. 문명의 낙관적 발전에 필요한 작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70년 전 제주 4⋅3을 기억하는 오늘의 4⋅3미술제에서 동시대를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다.

4⋅3 미술제의 생명력
4⋅3 미술제는 관광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제주를 바로 보고, 예술지상주의 아닌 삶과 밀착된 예술을 지향한다. 1994년 탐라미술인협의회(현재 탐라미술인협회, 이하 탐미협)창립과 동시에 1회 4⋅3 미술제<닫힌 가슴을 열며>가 개최되었는데, 초기 탐미협 구성원들의 의욕은 연계 프로그램의 규모에서 드러난다. 당시 작가들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제주시 조천읍 일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일대,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4⋅3 유적지 순례를 진행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전시 기간동안 ‘4⋅3 미술의 현재적 의미(김유정 미술평론가 발표)’와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과 전망(원동석 미술평론가 발표)’까지 두 차례 세미나가 있었고, ‘미술인의 밤’이라는 교류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2회 4⋅3 미술제<넋이여 오라>는 광주통일미술제와 교류하여 출품작들을 광주에 선보이는 시도가 있었고, 3회 4⋅3 미술제<4⋅3 그 되살림과 깨어남의 아름다움>은 민족미술전과 교류하여 출품되었던 전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번 더 선보였다. 5회 4⋅3 미술제<상극의 빗장을 열고 상생의 아름다움으로>는 제주 4⋅3 50주년을 기리며 4⋅3 역사 사진전 “긴 어둠속을 지나”, 탐미협 4⋅3 미술 대표작 모음전“50년의 4⋅3, 5년의 4⋅3”, 강요배의 4⋅3 역사화전 “동백꽃 지다” 총 세 개의 특별전시로 구성되어 참여작가만 6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행사였다. 6회 4⋅3 미술제<4⋅3 과 미국-보이지 않는 손 보는 눈>은 분명한 주제의식을 표방하는 회원들의 공동 창작으로 제작되었다. 8회 4⋅3 미술제는 광주⋅제주 미술 교류전으로, 10회를 맞이했을 때에는 전작도록을 제작하여 편찬하는 등 해마다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이후 11회부터 외부 예술감독제가 도입되어 연대기획전으로 확장되는 21회직전까지 4⋅3 미술제를 주도했던 탐미협 내부의 역동성이 상대적으로 사그라든 듯 보인다. 

제주 4⋅3 60주년을 맞은 2008년, 제주 4⋅3 평화기념관 건립이 완료되었다. 탐미협은 4⋅3평화기념관 내외의 예술작품을 도맡아 제작했고 같은 해 4월, 15회 4⋅3 미술제는 심포지움을 동반했다. 6월, 김종길 미술평론가의 주도로 4⋅3 미술제 아카이브전<평화⋅동행>이 서울시 평화공간 space*peace(현  space99)에서 개최되었다. 2010년 17회, 2012년19회, 2013년 20회4⋅3 미술제는 4⋅3 평화기념관 예술전시실에서 개최된다. 2014년 21회 4⋅3 미술제부터 예술감독으로 섭외된 김종길 미술평론가의 주도로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되기 시작한다. 같은 해 아트스페이스⋅씨 안혜경 대표의 주도로 미국 캘러포니아주 소노마카운티 뮤지엄(SCM)에서 4⋅3 미술 초대전<Camelia Has Fallen>이 개최되었다. 2014년은 매년 4월 3일이 ‘4⋅3 희생자 추념’ 국가기념일로 등재된 해이자 4⋅3 미술제 제작운영비에 대한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금이 처음 생겨난 해다. 4⋅3 미술제의 초창기 10년은 세상에 없었던 전시를 만들어낸 주체들에 의해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었고 역동적으로 흘러갔다. 이후 10년은 주도 세력의 세대 교체가 요구되는 과도기이면서 동시에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4⋅3 미술제를 지켜보던 미술계 전문가들이 새로운 동력이 되어 4⋅3 미술제를 국내외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4⋅3 미술제를 준비하며 참여작가들이 함께 유적지를 순례하는 기풍을 조명한 이는 21회, 22회 예술감독을 맡은 김종길 미술평론가였다. 그는 2008년 4⋅3 60주년, 15회 4⋅3 미술제 <개토開土-60년 역사의 변증>기념 심포지움 발표에서“기억투쟁의 4⋅3 미술, 그 상징 언어”에 대해 이야기했다.침묵을 강요받았던 4⋅3에 대한 “기억투쟁은 죽음의 부활이 아닌 죽임에 대한 살림의 복권이며, 닫힌 역사를 산 역사로 되돌리는 생명운동”으로 “탐미협의 4⋅3미술은 그런 기억투쟁의 결과물”로 해석했다. 또 4⋅3 미술제의 주요 특성을“4⋅3 희생자의 억울한 영혼을 미술의 언어로 씻김하는 것”과 “제주라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움직임” 등으로 꼽았는데, 미술제 참여 작가들이 창작을 매개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를 공부하며 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이 10년 내에 급격히 사라진 것과 대조적으로 현재까지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4⋅3 미술제의 주요 동력은 무엇일까? 외부 환경과 조건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진행되었던 4⋅3 유적지 순례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바로 해마다 4⋅3 유적지를 순례하며 참여자들에게 체득되는 몸의 기억, 이성을 넘어선 감성의 깊은 공감대 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2014년 이후 탐미협 외부 감독의 섭외로 참여하게된 국내외 작가들은 대부분 4⋅3 유적지 순례에서 크고 작은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제작했다.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경험 중 하나는 제주 토박이 아닌 이들은 알아듣기 어려운 우리말, ‘제주어’와 맞닥뜨렸을 때다. 올 해 참여작가 워크숍을 위해 섭외한 홍춘호(잃어버린 마을 무동이왓 생존자) 할머니와의 만남에서도 몇몇 작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과 대조되는 가슴시린 역사를 알게 된 때다. 묻혀진 우리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자각하며 받는 충격이 있다. 4⋅3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4⋅3 미술제의 참여작가 워크숍, 유적지 순례는 ‘배움’에 대한 겸손한 태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서적 연대감 등을 깨닫게 해준다.

4⋅3 미술제의 역동성은 역사에 대한 ‘배움’과 그 배움을 토대로 한 ‘미학적 실천’으로 고무되었을때 생겨난다. 4⋅3 미술제는 전시이면서 동시에 함께 공부하고 성장하는 일시적 공동체이며, 창작을 통해 각자의 성찰을 주장하고 소통하는 아고라다. 새롭거나 혹은 깊이있는 시각과 해석, 표현이 공존할 때라야 참여작가 간에 긴장감이 유발되며 작품의 깊이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통한 예술적 성취야 말로 4⋅3 미술제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동력이지 않을까.

<기억을 벼리다>에 동참하며
지난 2015년 22회4⋅3 미술제<얼음의 투명한 눈물> 아카이브 전시 제작에 참여한 인연으로 제주 이주의 꿈을 키웠다. 제주는 어머니의 고향이자, 친적들이 살고 있는 외가였고 꽤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4⋅3 미술제를 통해 바로 보게 된 이 섬은 매우 낯설었다. 그 느낌은 해가 지나도 흐려지지 않았고, 마음이 쓰였다.

제주로의 이주 그리고 25회 4⋅3 미술제 전시감독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와의 인연이 참 특별하다. 전시감독으로서 그의 책임감과 추진력은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이토록 열정적이고 민주적인 리더를 만나 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치했고, 그간 관객으로서 지켜보았던 4⋅3 미술제에 대한 각자의 소회를 터놓고 이야기했으며25회 4⋅3 미술제에서 구현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아이디어를 쏟아놓았다. 작품 배치와 연계 프로그램 구성에서 최상의 결정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실행했다.

2017년 12월 21일은 공식적으로 25회 4⋅3 미술제 준비가 시작된 첫 날이다. 사전 섭외된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1차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안혜경 전시감독의 기획 의도와 추진 방향을 해설하고4월까지의 스케쥴을 협의했다. 전시감독이 손수 준비한 음식들로 초면의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었다. 올 초 1월은 창작에 도움을 주기 위한 워크숍과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바쁘게 지나갔다. 1월 6일과 21일, 두 차례에 걸쳐 4⋅3 유적지 순례를 진행했으며22일에는 김종민 전 4⋅3위원회 전문위원을 모셔 강의를 들었다. 1월 17일부터 2월 7일까지 매주 수요일에는 아트스페이스⋅씨에서 전시감독 추천 영화 총8편을 관람했다. 인도네시아의 이념 갈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조슈아(미국) 감독의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 외에 베트남 전쟁, 아일랜드 독립운동과 스페인 내전 그리고 레바논 전쟁 등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었다. 현대세계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4⋅3을 국제적인 시선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계기였다.

2월 27일1차 기자간담회를 시작으로 25회 4⋅3 미술제는 본격화되었다. 무엇보다 <기억을 벼리다>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시각화해준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과의 협업은 전시 관계자들에게 무척이나 활력이 되었다. 완성도 높은 시각물은 일하는 사람들을 고무시켰고, 전시에 대한 책임감을 높여주었다. ‘일상의 실천’은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디자이너 세 명(권준호, 김경철, 김어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4⋅3 미술제에 대한 연대와 응원의 마음으로 도록 이하 수십종에 달하는 시각 매체를 제작해 주었다. 더불어 폭넓은 관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입체적인 전시 관람을 돕기 위한 연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협력해준 (사)제주민예총과 특히 양동규 작가(제주민예총 사무처장)의 노고에 대한 인사를 빼놓을 수 없다. 올 해로 25년째 문화 예술로 제주 4⋅3을 널리 알리고, ‘해원상생’을 위해 앞장서 온 (사)제주민예총의 행보 또한 매우 감동적이고 경이롭다.

4⋅3 70주년을 맞아 ‘2018 제주 방문의 해’ 홍보와 함께 진행되는 4⋅3 미술제.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금을 받은 이래 어느 해와 다름 없는 예산 현황이었지만 예산규모를 탓하며 소원하게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촉박한 일정과 부족한 예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성을 다해 작품을 제작하고 참여해주신 40명 작가 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25회 4⋅3 미술제 관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마중물’로 동참해 준 박주애 작가와 김승민, 김수정, 김지훈, 박현준, 오승미 제주대학교 미술학부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4⋅3 을 매개로 만난 청년들의 협업과 참여가 앞으로 개최될 4⋅3 미술제에서 조금씩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옛 자료를 살펴보며 감동받았던 수많은 문구 중 하나를 나누고싶다.

“이 조그만 미술제가 그래도 도민들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얻는 셈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술이 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한 행동은 그 공동체의 역사에 대해 바른 애정을 갖는 일입니다.”
-1997년 4회4⋅3 미술제 <자연⋅사람⋅역사> 운영위원회 초대의 글 중

덧붙이는 글 | 제주4.3 70주년 25회 4.3미술제 <기억을 벼리다> 도록에 수록된 큐레이터 후기입니다. 
이미지출처©일상의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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