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거울 앞에 있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눈은 퀭하다. 웃음기 하나 없이 거울을 쳐다본다. 눈은 충혈되어 빨갛고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 검다. 거울에 비친 그 모습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긴다. 이렇게 완성된 자화상들은 보기 좋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거칠고, 투박한, 날 것 그 자체다. 

한 여성이 거울 앞에 있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름답고, 단정하고, 화사한, 미소, 따뜻한, 상냥한 (익숙하게 요구받는) 여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울 앞에서 나체로, 다리를 벌린 채 앉아 있는, 무표정한 여성. 머리는 부스스하고 눈은 퀭하다. 눈은 충혈 되어 빨갛고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 검다. 인사동 사거리, 갤러리 밈에서 진행 중인 이은경 개인전 <위로하는 자화상>의 풍경이다.

미술은 문자가 생겨나기 전, 문명의 시작부터 존재했던 인간의 원초적 행위 중 하나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자화상이 등장한 시기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화가는 근대에 들어서야 기술자 아닌 창조자, 부속물 아닌 주체로서 인식된다. 타자의 필요에 의한 제작에서 벗어난 자발적 창작. 감정의 표현과 스스로에 대한 탐구가 사회성을 갖게 된 것은 모두 근대의 산물이다.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근대 미술사에서 역시 여성주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남성주체로부터 그려지는 객체(대상)이었고 남성들에게 소비되어왔다.

전시를 보며 느낀 낯섦과 불편함이 무엇인지 이내 깨달았다. 여성주체가 그린 여성이 타인 혹은 남성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타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치장은 없다. 그림 속의 여성은 정면을 바라본다. 아니, 노려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물감을 찍어 바르는 속도, 거침없는 붓놀림, 과감한 색의 대비. 벽에 걸린 한 장의 그림이 온 힘을 다해 화를 내고 있는 듯하다.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인가.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인가, 그림이 홀로 마주하게 될 세상인가. 기억을 곱씹어 보자. 자화상이나 초상화 속에서 이런 여성을 본 적이 있는가? 자화상을 그렸던 몇몇의 여성작가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 어렵다.



이어읽기 🚪 http://www.vop.co.kr/A00001130515.html

덧붙이는 글 | 인터넷언론 VOP [박민희의 미술이야기]로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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