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문화 리뷰매체 ‘두쪽’ 발행인 권혁빈의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 내용은 연말 특집기획으로 미술대학(이하 미대)의 졸업전시 후기를 연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졸업생들의 작품을 진지하게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좋은 작품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는 졸업전시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그렇다. 미대 졸업전시란 어느새 다수의 미대 학생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작가양성을 목표로 하는 커리큘럼을 이수하며 수년간 고액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지만 졸업 이후에도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생계유지 불투명’이라는 현실적 어려움에 반작용하는 절실한 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미술대학이 생긴 이래 크게 변하지 않는 정적인 커리큘럼과 ‘예술가’도 ‘교육자’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의 연로한 교수들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제도권 내 예술교육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의리’라는 명분이 아닌 ‘관람’을 위한 졸업전시 방문은 꽤 새로운 일이었다. 개인사정 상 일정이 맞아 관람이 가능했던 곳이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홍익대학교였다. 학교 선정에 큰 의미가 없음을 밝혀둔다.

나는 전시 된 작품들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이는 것들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것들.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조형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것들이다. 자세히 보았던 것들은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들이다.

이윤지의 “최고의 도피” (1500x1000x2000, 오브제, 2015) @촬영편집 박민희

매우 직설적인 작품이다. 모서리 공간을 차지한 이윤지의 “최고의 도피”는 각종 영화와 연극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다. 붉은색, 녹색, 푸른색 등의 조명이 정신없이 변화한다. 포스터에 파묻혀 모서리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매우 괴로워 보인다. 작가가 왜 연극과 영화관람 등으로 추측되는 활동을 ‘도피’라고 표현했겠는가. 그렇다면 그가 달아나버린, 혹은 달아나고 싶은 ‘현실’은 무엇일까?

황은솔의 “Gloomy Sunday” 부분 (00:03:10, 영상/설치, 2015) @촬영편집 박민희

작품을 전시하기에 부적합해 보이는 좁은 강당은 매우 산만했다. 유턴의 모서리에서 만난 “Gloomy Sunday” 앞에 앉아 헤드셋을 착용했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피아노 원곡은 폐기되어 접할 수 없다는 그 음악.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Gloomy Sunday”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목소리였다. 이승에 없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우울해하는 한 사람, 그리고 자살을 결심하는 노래다. 작가는 노래에 맞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무표정과 눈 밑의 그림자가 변하지 않는 한 남성의 하루. 우울하다.

한수진의 “봐 줄 이를 찾아 나선 개의 보물창고” (480x700x850, 복합재료, 2015) @촬영편집 박민희

한수진의 “봐 줄 이를 찾아 나선 개의 보물창고”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 말고 다른 거’로 시작하는 흑백 동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주인공은 ‘개’인데, ‘사슴’을 부러워한다. 가짜 사슴뿔을 머리에 달아보기도 하며 사슴인 척을 해 보지만 개는 절대 사슴이 될 수 없다. 결국 개는 사슴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사슴의 머리뼈를 뒤집어쓰고 원하던 모습이 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봐 줄 이가 없다. 산산조각 난 머리 뼈 가운데 놓인 사슴뿔 조형물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섬뜩하다. 수술의 흔적으로 보여 지는 노끈 등과 함께 그 실체를 제시함으로서 동화의 몰입을 높여준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삶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시대. 스스로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나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한수진이 사용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호감으로 다가왔다. ‘개’와 ‘사슴’으로 은유하여 만든 동화와 그들을 연상하게 되는 동물들의 머리뼈, 시들어버린 장미꽃 등. 동화의 삽화와 그것이 제시된 형태(종이 프린트), 편집디자인 등의 완성도가 아쉬웠지만, 좀 더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이해림의 “Dreamin Frog” (900x900x1200, 우레탄, 시멘트, 스티로폼, 물, 2015) @촬영편집 박민희

이해림의 “Dreaming frog”는 상대적으로 밝다. 우물 밖에 개구리 열두 마리가 앉아있다. 곱게 다듬어진 개구리들은 꿈을 꾸고 있나보다. 그 모양이 브로콜리 같다. 왜 하필 브로콜리일까. 아마도 이 개구리들은 청개구리인가보다. 혹은 몸에 좋은 항암개구리일까? (브로콜리는 항암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우물의 물은 다 말라서 바닥에 그 흔적만 남았다. 그 앞에 걸터앉은 개구리들이 잠시 사색과 심호흡을 한 뒤에 우물 밖으로 멀리멀리 뛰어나가면 좋겠다.

전영훈의 “움직이는 평상” (가변설치, 나무, 장판, 2015) @촬영편집 박민희

이 전시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움직이는 평상”이 아닐까. 전영훈은 작가의 말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 댁 평상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졸업을 앞둔 그는 ‘나를 위한 여러 가지 평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는데, 오랫동안 수다를 떨거나 주전부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런 평상이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움직이는 평상”은 그의 바람대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전시장을 두 번 방문했는데, 그 때마다 다양한 사람들이 평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짐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 모습을 접했다. 바로 작가가 의도한 그 풍경일 것이다.

이 외에도 동물의 사체 일부를 판매하는 가게를 구현한 김민주의 “MORSUS TOY SHOP”, ‘소중한 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이하늘의 “Precious”, 예보영의 “당신이기에 아름답다”, 김진희의 “DIY guillotine” 등 작가의 의도가 짐작되는 작품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표현방식의 완성도가 낮았다. 너무 날 것이었고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한상은의 “D”와 윤영준의 제목 없는 작품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았고 눈길을 끄는 것들이었다. 특히 윤영준의 것은 사방에서 당기는 줄과 그 가운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붉은 물체가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는데, 그 작품을 좀 더 느끼기에 전시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다.

왼쪽 한상은의 “D”(1800x1000x1800, T-shirts, Box, 2015), 오른쪽 윤영준의 작품(2330x450x2330, 혼합재료, 2015) @촬영편집 박민희

덧붙이는 글 | 당시 새롭게 생겨난 시각문화 리뷰매체 ‘두쪽’에 기고 했던 글이다.
현재 관련 매체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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